글로벌 '식품 한류' 이끈 7전8기 도전장 [식품업계 해외사업 리뷰]한일월드컵 이후 인지도 확대…내수 감소 속 新성장 동력 낙점

전효점 기자2018-10-26 오전 8:32:28

[편집자주]

국내 식품업계는 내수 시장에서의 성장 한계를 넘기 위해 짧게는 수년전에서 길게는 수십년 전부터 해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70년대 해외 진출 초기에는 재외 교포를 대상으로 라면과 간장, 김치를 판매하면서 시장을 익혔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오늘날 '식품 한류'의 주역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더벨은 국내 식품기업들의 글로벌 도전기와 성패를 좌우한 전략 변화, 현 주소 등을 살펴본다.
식품사들의 해외사업 진출은 1960년대부터 이뤄졌지만 본격적인 매출 신장이 이뤄진 것은 2000년대다. 이 시기 한일월드컵 개최로 국가 인지도가 확대됐으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의 구매력과 한류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성장했다. 오늘날 중견 식품사들은 줄어드는 내수 매출을 상쇄하고, 글로벌에서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농림수산식품 총수출은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0억~30억달러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7년 40억달러, 2012년 8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최근 10여년간 집중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농수산식품 총 수출 규모는 91억 달러다. 가장 큰 수출국은 일본과 중국으로, 각각 23%씩을 차지하고 있다. 아세안국가로의 수출이 18%로 뒤를 이었고 미국이 11%, 유럽이 7%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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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7 한국의 농수산식품 수출 변화 추이(출처=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1960년말 재외교포 대상 수출 시작…1990년대 말까지 낮은 인지도

1960년대 가장 먼저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린 곳은 삼양식품과 하이트진로 등 일찍이 내수시장 점유율을 넓혔던 식품기업이었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 시기 파견 군인들을 위해 첫 수출의 닻을 올렸다. 하이트진로는 1968년 베트남에 소주를, 삼양식품은 1969년 라면을 발판으로 1970년대 수출 지역을 넓혀 갔다. 이후 농심과 오리온, 대상 등 당시 대표 식품사들이 수출 대열에 합류하면서 1975년만 해도 10억달러를 하회하던 국내 농수산식품 총 수출규모는 1980년 20억달러로 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국내 식품을 처음 세계에 제대로 알리게 된 첫 번째 변곡점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 많은 기업들이 해외사업부를 설치하고 현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1980년대와 1990년대 주요 수출 식품군은 참치와 인삼, 잎담배와 같은 1차 농수산물에 머물렀다.

오뚜기와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오늘날 종합 식품기업들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처 순차적으로 해외사업을 본격화했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가공품이나 한식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낮았다. 수출도 일본 등 식문화가 비슷한 인접 국가나 재외 교포 등에 국한됐다. 당시 연간 20억~30억달러에 이르던 농식품 수출액에서 일본은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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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009 한국의 농수산식품 수출 변화 추이(출처=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00년대 한일월드컵· 中·亞 급성장…김치·김·소주, 해외 수요↑

2000년 초까지 30억 달러 내외에서 정체돼 있던 연간 농식품 수출 규모는 한일월드컵이 개최됐던 2002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도약했다. 한일월드컵은 이전까지 5% 미만이던 식품 해외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로 치솟는 계기였다.

수요 구성에 변화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김치 수출 규모가 급증, 2005년 연간 수출 1억달러를 돌파했다. 궐련과 라면이 가공식품 1, 2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커피조제품과 소주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가공식품에 대한 해외 수요도 급등했다.

대상은 2006년 두산으로부터 김치 사업부문을 인수한 후 '종가집' 브랜드를 내세워 김치 수출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2007년부터 한국산 김 수출액도 연간 6000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처음으로 수출 규모 10위권 내로 진입했다. 당시 정부는 대대적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강조했다. 한미 FTA를 비롯해 주요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활발해진 교류도 식품업계의 글로벌 진출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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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치중된 수출국도 전세계로 다변화됐다. 일본으로의 식품 수출은 경제 침체로 1990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급락했다. 반면 2002년 2억달러이던 중국 수출은 2006년 4억달러, 2009년 6억달러로 매년 증가했다. 중국은 2007년 급격히 늘어난 중산층 소비력을 기반으로 미국을 제치고 한국 식품 2위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중국 시장 흥행에 따라 국내 농식품 수출 규모는 2011년 전년 대비 30% 이상 늘면서 72억달러로 최고점을 찍었다

◇식품업계, 한류 열풍 이어갈까…선두 선 CJ제일제당

2013년 이후부터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한류 열풍이 대대적으로 불면서 이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 식품기업들이 늘었다. 삼양식품은 이 시기 수혜를 본 대표적인 식품사다. 2015년 300억원을 밑돌던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2016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불닭볶음면' 열풍이 본격화하면서 수출 규모를 매년 200~300% 늘렸다.

CJ제일제당이 전세계에 ‘비비고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CJ제일제당의 해외사업은 1994년, 2002년에 각각 중국법인과 일본법인을 설립하면서 주변국 매출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2012년 미국법인 설립 후 2015년 베트남법인, 2016년 이후 독일과 미얀마, 러시아 등에도 현지 법인을 세우면서 글로벌 식품기업으로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기업들은 50년에서 100년까지 역사가 오래된 기업들이 많지만 업계 전반적으로 해외 진출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대"라고 말했다. 이어 "한류에 따라 한식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주변국가의 소비력도 증가했지만, 해외 매출 비중이 10%를 넘는 기업이 드문 것도 현실"이라며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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